퀀텀에너지연구소 연구팀의 논문으로 촉발된 상온·상압 초전도체 검증 열기가 뜨겁다. 7월 22일 연구팀은 상온·상압 초전도체 ‘LK-99’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동료 연구자의 검토 없이도 올릴 수 있는 웹사이트 ‘아카이브’에 올렸다. 이후 지금까지(8월 4일 기준) 아카이브에 ‘lk99’ 혹은 ’lk-99’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논문만 퀀텀에너지연구소 연구팀이 올린 것을 제외하고 8개다. 미국, 중국, 인도 등의 연구팀이 올린 이들 논문은 모두 LK-99의 상온 초전도성을 이론적 혹은 실험적으로 검증하려는 게 목적이다.
LK-99 논문의 저자 중 한 명이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김현탁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학 연구교수는 씨즈와의 인터뷰에서 “300K(27℃)에서 LK-99의 반자성으로 자화되는 정도(magnetic susceptibility)가 흑연보다 5450배 크게 나왔는데, 이는 초전도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나는 LK-99를 초전도체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게다가 임계온도에서 저항값이 급격히 떨어지는 구간도 관찰됐다”고 설명했다. LK-99가 초전도체가 되는 원리를 묻는 말에는 “이런 초전도 현상은 BCS 이론을 보강한 BR-BCS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BR-BCS 이론은 김 교수가 2021년 학술지 ‘사이언티픽 레포츠’를 통해 발표한 것이다.
씨즈가 화상 인터뷰로 김현탁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학 연구교수를 만났다. 인터뷰 내용은 유튜브 채널 ‘씨즈’에서 볼 수 있다.
https://youtu.be/O6vRNaBd5CM
전문가들은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8월 2일 ‘LK-99 검증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발표하며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시편을 제공하면 상온 초전도성 여부를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비슷한 물질을 만들어봤지만 재현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보고도 있다. 인도 국립물리연구소와 중국 베이징 항공한천대 연구팀 등이 이런 논문을 아카이브에 올렸다.
이에 대해 원병묵 성균관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지금까지 재현에 실패한 실험들은 LK-99를 상자성 반도체 물질 또는 상자성 부도체 물질이라고 결론지었다”면서도 “각 연구팀이 재료를 합성하는 과정과 원료의 순도 등 미세한 변수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연구팀의 검증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연구팀들이 퀀텀에너지연구소가 공개한 LK-99 제조법을 따라 만들었다 하더라도, 미세한 차이 때문에 퀀텀에너지연구소의 LK-99와는 다른 물질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편 LK-99가 초전도체일 가능성에 긍정적 무게를 두는 보고도 있다. 마찬가지로 아카이브에 논문을 올린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연구팀은 LK-99가 상온에서 초전도성을 보이는 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중국 화중과학기술대학교 연구팀도 LK-99 제조법을 따라 물질을 만들어 LK-99보다 더 강한 ‘마이스너 효과’를 관찰했다는 논문을 아카이브에 올렸다. 마이스너 효과는 초전도성의 주요 특징 중 하나로, 초전도체가 내부로 자기장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밀어내는 현상을 말한다. 화중과기대 연구팀은 자신들이 만든 물질을 자석 위에 뒀더니 공중에 뜨는 현상을 영상으로 찍어 올린 뒤 이를 마이스너 효과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도 원 교수는 “화중과학기술대 연구팀의 영상에서 보이는 자기부상현상(자석 위에서 물체가 뜨는 현상)만으로 초전도체라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며 “초전도체가 아닌 반자성 물질이어도 자기장이 충분히 세다면 같은 현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반자성 물질은 평소에 자성을 띠고 있지 않다가 외부에서 자기장이 가해지면 반대 방향으로 약하게 자화되는 성질을 띠는 물질로, 구리와 금, 은 등이 여기에 속한다. 반자성 물질도 자석을 가까이 대면 자석을 밀어내는 성질이 있는데, 초전도체보다는 그 힘이 작아서 충분히 센 자석 위에 올려야 자기부상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퀀텀에너지연구소 연구팀의 논문은 현재 아카이브에 2개가 올라와 있다. 이에 대해 김현탁 교수는 “원래는 공인된 학술지에 먼저 제출해 심사가 끝나기 직전에 아카이브에 올리지만, 이번에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며 “먼저 올라간 논문은 저자의 동의를 모두 받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논문 중 두 번째 올라간 논문은 현재 학술지 APL 머티리얼스에 제출돼 심사를 받고 있다.
LK-99에 대한 검증 열기가 이토록 뜨거운 것은 상온과 상압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만드는 게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1911년 수은이 영하 269.2℃(4.2K)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인다는 게 최초로 밝혀진 후, 100년이 넘도록 상온과 상압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 상압에서 초전도 현상이 보이는 물질은 매우 낮은 온도가 필요하고, 상온에 가까운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은 매우 높은 기압이 필요했다. 이런 탓에 MRI 등에서 초전도체가 사용되고 있지만 냉각재가 필요한 등 사용 조건이 까다롭다.
초전도 현상이 왜 일어나는 건지 설명하는 이론이 없다시피 한 것도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찾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다. 지금까지 과학계에서 인정받은 초전도 이론은 1972년 노벨상을 받은 ‘BCS 이론’뿐이다. 이는 1957년 미국 물리학자 존 바딘, 리언 쿠퍼, 존 로버트 슈리퍼가 제안한 것으로, 초전도 현상을 양자역학적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초전도체는 온도가 낮아질수록 저항이 서서히 줄어들다가 특정 온도에서 전기 저항이 0으로 갑자기 떨어지는 게 특징이다. 이때의 온도를 ‘임계 온도’라고 부른다. 전기 저항이 온도에 비례하게 줄어드는 건 고전 물리학으로도 설명할 수 있지만, 임계 온도에서 갑자기 0이 되는 건 설명할 수 없다.
BCS 이론은 양자역학을 이용해서 그 이유를 설명해 내지만, 이론에 따르면 영하 243℃(30K) 이상에서는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선 안 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영하 243℃(30K) 이상의 초전도체는 꾸준히 발견돼 왔다. 가장 최근에 발견된 초전도체 LaH10은 임계온도가 영하 25℃에 이른다. 주변 압력이 대기압의 150만 배가 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이번에 논문 저자로 참여한 김현탁 교수는 BCS 이론을 보강한 자신의 BR-BCS 이론이 모든 환경에서의 초전도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LK-99를 1999년에 처음 발견했던 퀀텀에너지연구소의 이석배 대표 등이 김현탁 교수를 찾은 것도 BR-BCS 이론에 대한 논문을 2021년에 발표했기 때문이라는 게 김현탁 교수의 설명이다.
정국채 한국재료연구원 자성재료연구실 책임연구원은 “BR-BCR 이론이 아직 학계의 주류 이론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원병묵 교수는 “아인슈타인의 중력파 이론도 실험적으로 맞다고 인정받기까지 100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BR-BCS 이론에 대한 논문은 LK-99 논문과 달리 학술지에 정식으로 게재됐지만, 실제로 과학계에서 널리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는 아직 기다려 봐야 한다는 뜻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씨즈 영상에서 볼 수 있으며, 다음 주에는 김현탁 교수 인터뷰를 해설하는 영상이 씨즈 채널에 업로드될 예정이다.
LK-99 논란을 요약한 유튜브 채널 ‘씨즈’의 영상
https://youtu.be/0WAQDkocn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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