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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소주의 모든것 역사 기원 종류 안동소주 기원 난중일기속 소주

by 단석비후 2024.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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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1년에 마시는 소주가 52.9병이라고 합니다.*
1년이 52주이니 일주일에 1병은 마시는 셈이죠.
(*2021년 국세청 자료 기반)


소주의 진짜 기원은 페르시아입니다.
증류주 아라크가 바로 그 기원인데요.
 
아라크는 페르시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
위장약으로 쓰려고 만든 술입니다.
우리나라에는 13세기 무렵 전파가 되었는데
그 시대에 어떻게 한반도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1240년 무렵 몽골군은 서방 원정을 떠나
페르시아까지 정복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때 전리품으로 얻은 술이 아라크입니다.
 
몽골제국의 영토가 확장되면서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고려까지
아라크가 전파된 것입니다.
 
고려인들은 아라크를 아랄길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내 빠져들었는데,
이색은 이런 소감을 읊기도 했습니다.

 

형체에 기대지 않게 하는 술 속의 영특한 기운이여
가을 이슬로 둥글게 맺혀 밤 되면 톰방거리는 소리
생각하면 우스워라 청주의 늙으신 종사님이
하늘의 별과 맞먹도록 뻐기게 해 주시다니
도연명이 이 술 얻고 나면 깊이 고개 숙일 터
정칙이 맛을 보면 홀로 깨어 있으려 할지
반 잔 술 겨우 넘기자마자 훈기가 뼛속까지
표범 가죽 보료 위에 금병풍 기댄 기분일세

《목은집》

아랄길은 이후 소주(燒酒)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한자 소() 불에 태운다는 뜻으로,
도수가 높아 몸이 타는 것 같아 붙여진 이름입니다.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 <유곽쟁웅(遊廓爭雄)>. 술에 잔뜩 취한 양반 한량들의 유흥가 난투극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소장=간송미술문화재단

 

난생 처음 접한 도수 높은 술, 소주 때문에
신세를 망치거나 죽은 조상님들도 있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아들 이방우는
아버지가 고려를 무너뜨린 일을 비관하여
벼슬을 버리고 매일 소주를 마시다가
허무하게 죽었고,
 
조선 초기 문신 채수는
여름날 차가운 소주를 혼자 잔뜩 마시다가
기절해버려 가족들이 죽은 줄 알았다고 합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소주의 독을 푸는,
숙취해소법(?)이 등장합니다.

 
소주를 너무 마셔 중독이 되면 얼굴이 파랗게 되고 혼미하여
의식을 잃게 된다. 그리고 심하면 창자가 썩고 옆구리가 뚫어
지며 온몸이 검푸르며, 토혈과 하혈이 되어 곧바로 죽게 된
. 환자를 처음 발견하면 빨리 옷을 벗기고 몸을 밀어 무수
히 굴려서 토하게 하면 소생한다. 또 온탕(溫湯)에 나체로 담
가 놓고 온수를 부어 주어 항상 따뜻하게 해 주어야 하며, 
약 냉수를 부어 주면 즉사한다. 또 급히 생오이와 그 덩굴을
짓찧어 즙을 내서 빨리 입을 벌리고 먹여 주기를 멈추지 말아
야 하며 또 얼음을 부수어 입안과 항문에 넣어 주되 이를 깨
어날 때까지 해 준다. 감나무 잎을 짓찧어 즙을 내서 먹여 주
는 것도 방법이 된다.

 

발가벗겨져서 온탕에 담가지고
얼음을 항문에 넣어준다니
역시 술은 적당히 마시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주 먹고 죽은 사람들과는 반대로,
조선시대에는 소주를 약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소주의 기원인 아라크가 중동 지역 위장약이었듯,
조선에서도 구충제, 설사약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난중일기>를 보면 오늘도 소주를 마셨다는 언급이 많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위장병 증세에 시달린 이순신 장군이
약으로 마신 것이 바로 이 소주입니다.
 
정조 임금 시절인 1785, 당시 병원 격인 혜민서에서 올린
올해 발생한 여러 가지 사소한 질병들에는 오직
소주만 써도 살아난 사람들이 많습니다라는 보고가 남아있습니다.
 
사실 이때 마셨던 소주는 지금 마시는 소주와는 다릅니다.
훨씬 맛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국 전통술인 안동소주. 몽골군이 안동에 주둔할 때 증류 기술을 전파해 생겨났다.

 

조선 왕조 내내 사랑받던 소주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박정희 정부에 접어들면서
뜻밖의 탄압을 받게 되는데
바로 양곡관리법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우리 조상들은
된장, 고추장, 김치를 담그는 것처럼
집집마다 술을 빚었습니다.
 
그래서 양곡관리법에 반발해
몰래 술을 빚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정부에서 시골 농가를 시시때때로 단속하면서
술 단지를 찾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걸리게 되면 큰 곤욕을 치렀습니다.
 
이렇게 군사정권을 거치며 한국의 전통주들이
사실상 맥이 끊어져버린 것입니다.
 
결국 소주의 원료를 쌀 같은 곡식 대신
값싼 밀가루, 고구마로 교체하고
아스파탐 같은 단맛이 나는 화학 물질을 넣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소주가 희석식 소주입니다.

 

 
희석식 소주를 처음 맛본 사람들은
지독하고 쓰고 맛이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저품질 알코올 때문에 속도 거북해졌고
맛을 내기 위해 화학 감미료 첨가를 높이자
숙취도 더 심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희석식 소주가
1960년대 이후 한국 술시장을 장악합니다.
값이 절대적으로 쌌기 때문입니다.
 
소주는 자체의 맛이 없어
반주로 곁들여 마시는 게 좋지만
안주를 살 돈이 없으면 소주만 마셔야 하는데,
 
한국 드라마, 영화를 보면
바로 이 깡소주가 가난의 대명사로 등장하죠.
 
그런데 한류 바람이 불면서
한국 술 문화에 관심이 높아지며,
소주도 점점 다양화, 고급화되고 있습니다.
 
 
 과일 소주가 풍미했던 한 시대를 지나
한 병에 만원이 넘는 원소주까지
소주의 변신은 끝이 없네요.
 
이처럼 역사를 알고 마시면 더 맛있고 재밌는 소주,
미래엔 어떤 새로운 소주가 출시될지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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