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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서부전선 이상없다 선동 참상 비판

by 단석비후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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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동

파울 보이머를 비롯한 친구들은 학교 선생님의 선동에 속아 전장에 참여한다. 부모님의 사인을 위조해 가면서까지 들뜬 마음으로 전쟁을 하겠다는 그들의 해맑은 웃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전장으로 점점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은 부상이 심하고 시체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살기 위해 총을 쏴야 한다. 기초 군사 훈련이나 제대로 받았는지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4만 명이 넘게 죽고, 죽은 청년들의 시체는 군복을 벗겨 겹겹이 쌓아 놓는다. 총구멍이 난 군복은 공장에서 세탁되어 천이 덧대어지고 전사자의 명찰은 떼어지지도 않은 채 새로운 대체자에게 입혀진다. 참호전으로 계속되는 인명피해가 생기자 독일과 프랑스 간의 평화협정을 제의한다. 양측의 수장은 1918년 11월 11일 11시를 기해 전쟁을 휴전하기로 하지만 종료 15분 전까지도 1보 전진을 위한 전투를 한다. 친구들은 이미 모두 잃었다. 타덴도 다리부상 후 포크로 목을 찔러 자살하고 카트는 민간인의 먹을 걸 훔치다 그 집 아이의 총에 맞아 죽게 된다. 아무런 소득도 없다. 참호전으로 전선의 이동은 거의 없고 300만 명이 전사했다.

 

출처 네이버

2. 참상

우크라이나 전쟁을 뉴스를 통해 전해 듣고 있지만 전쟁의 참상을 느끼기에는 부족하다. 죽어간 병사의 군복을 벗기고 새로운 명령을 하릴없이 대기하며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 알지도 못한 채 의지를 잃어가는 병사의 모습이 볼만하다. 전장에서 군인이 먹는 음식과 잠자리를 위정자들의 음식과 잠자리가 대비되는 모습도 특이하다. 탱크가 몰려올 때 떼를 지어 도망가는 쥐들과 철조망에 얽힌 시체들, 포탄과 함께 분리되어 날아가는 신체 일부 등은 전쟁의 참상을 느끼게 해 준다. 이 영화는 1차 세계 대전시 서부전선에서 싸운 독일군 병사 파울 보이머의 시각으로 그린 전쟁 영화다. 독일어로 사용되는 이 영화는 감독이 독일인의 죄책감과 책임감 등을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들의 잘못된 판단이 어떤 비극을 몰고 왔는지 세상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전쟁을 미화하고 준비하며 발뺌하는 누군가 하고는 입장차이가 확연히 다르다.

 

3. 비판

이 영화에서 전쟁을 선동하는 교장, 명예욕에 휴전 15분 전에도 돌격을 명령하는 장교, 자존심 때문에 피해를 알면서도 휴전을 망설이는 최고위급 수뇌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피는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들이 흘리고 있고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결정을 하고 있다. 왜 싸워야 하는지 모르는 전쟁에서 죽지 않기 위해 총부리를 겨눌 뿐 목적은 희미해진다. 휴전에 기뻐하는 양측은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이미 이겼다는 축제 분위기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도 계속되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전쟁은 잔혹하다. 화염방사기로 벌레 죽이듯 태워 죽이고 당시엔 신무기였던 전차에 놀라 두려워하며 불구가 된 자신의 모습에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포크로 자살하는 모습까지 잔혹하다. 모든 등장인물은 살기 위해 발버둥 칠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미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대한민국은 자주국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미 그 성과가 해외에 빛을 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만약을 위한 방어일 뿐 국민 절반이 총을 쏠 줄 아는 대한민국에서 조차 전쟁을 원하지 않고 있다. 많은 이산가족과 전사자, 가장을 잃은 구성원들의 생존을 위한 버거움을 이미 기성세대는 충분히 겪었다. 전쟁은 미래세대의 싹을 없애기 때문에 미래 혹은 장래를 위한 결정일 수 없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는 건 기적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눈을 통해 많은 것을 엿볼 수 있다. 참전하기 전에는 선동당해 뭣도 모르고 환호하고 환희에 찬 눈빛을 볼 수 있다. 죽어간 동료의 이름표를 회수할 때면 알 수 없는 회한과 슬픔이 느껴진다. 머리통이 날아가고 화염방사기에 몸이 불타며 전차를 피해 도망 다닐  때는 극한의 공포가 느껴진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참호를 누비고 다니며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적군에 대비하는 모습에서 잔뜩이나 긴장한 모습이 느껴진다. 모든 친구를 잃은 모습, 자신의 목을 포크로 찌르면서 자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주인공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이미 휴전 시간이 제시된 상황에서 또 공격을 해야 한다는 좌절감과 공포는 가장 절정이다. 민가에서 오리를 훔쳐 달아나는 모습에서는 먹을 수 있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그 사실 역시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것을 뺏기는 분노일 뿐 그들의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는 1차, 2차 세계 대전을 치르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또 다른 희생을 양산하기보다 이젠 경험을 통해 진보해야 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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