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게를 접고 나가려는데 임대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원상회복 하고 나가셔야죠. 싹 뜯어서 빈 상태로 돌려주세요."
그런데 그 인테리어, 절반은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있던 겁니다. 권리금 주고 받은 거고요. "내가 안 만든 것까지 내 돈으로 뜯어야 하나?"
여기서 보증금이 묶이고 분쟁이 시작됩니다. 철거 견적이 수천만원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대법원 판례가 두 개 있는데 결론이 정반대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만드는 건 "계약을 어떤 형태로 했느냐"입니다.
원상회복 의무는 어디서 나오나
먼저 근거부터 봅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아니라 민법입니다.
「민법」 제654조(준용규정)
제610조 제1항, 제615조부터 제617조까지의 규정은 임대차에 이를 준용한다.
「민법」 제615조(차주의 원상회복의무와 철거권)
차주가 차용물을 반환하는 때에는 이를 원상에 회복하여야 한다. 이에 부속시킨 물건은 철거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빌린 물건은 빌렸을 때 상태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고, 임대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뜻입니다.
대법원도 이렇게 정리합니다.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임차목적물을 반환하는 때에는 원상회복의무가 있고(「민법」 제654조, 제615조), 수리·변경 부분을 철거하여 임대 당시의 상태로 복구해야 한다.
문제는 "임대 당시의 상태"가 언제의 상태냐입니다. 여기서 모든 다툼이 갈립니다.
정반대 결론을 낸 두 판례
판례 ① — 내가 설치한 것만 (대법원 1990. 10. 30. 선고 90다카12035)
사실관계. 전 임차인의 유흥음식점을 인수해 영업하던 임차인이 내부 시설을 일부 개조했습니다. 임대차가 끝났는데 일부만 원상회복하자 임대인이 보증금 반환을 거부했습니다.
대법원 판단.
임차인의 원상회복의무의 범위는 그 임차인이 설치한 범위 내의 것으로서 임차인이 그가 임차 받았을 때의 상태로 반환하면 되는 것이지, 별도의 약정이 없는 한 그 이전의 사람이 시설한 것까지 원상회복할 의무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 전 임차인이 만든 건 안 뜯어도 됩니다.
판례 ② — 전 임차인 것까지 (대법원 2019. 8. 30. 선고 2017다268142)
사실관계. 커피전문점으로 이미 인테리어가 된 점포였습니다. 임차인이 2014년에 전 임차인으로부터 영업을 양수해 그대로 운영했습니다. 임대차가 끝나고 시설을 철거하지 않자 임대인이 직접 철거비를 부담한 뒤 청구했습니다.
임차인은 "내가 설치한 게 아니다"라며 다퉜습니다. 판례 ①을 보면 맞는 주장 같죠.
대법원 판단. 하지만 결론은 반대였습니다.
원상회복의무의 내용과 범위는 임대차계약의 체결 경위와 내용, 임대 당시 목적물의 상태, 임차인이 수리하거나 변경한 내용 등을 고려하여 구체적·개별적으로 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는 영업 양수 과정에서 임차인의 지위가 전전 양도된 것으로 보아, 전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까지 철거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전 임차인이 만든 것도 뜯어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이 갈림길인가
두 판례를 나란히 놓으면 이렇게 됩니다.
| 계약 형태 | 임대인과 새 임대차계약 | 임차인 지위 양도(승계) |
| 원상회복 범위 | 본인이 설치한 부분만 | 전 임차인 시설까지 |
| 기준 | 내가 임차받았을 때 상태 | 최초 임대 당시 상태 |
결정적인 건 "내가 임대인과 새로 계약했느냐, 전 임차인의 지위를 이어받았느냐"입니다.
권리금을 주고 가게를 인수할 때 이 두 갈래가 나뉘는데, 많은 분들이 자기가 어느 쪽인지 모르는 채로 도장을 찍습니다. 그런데 이 선택이 10년 갱신요구권과 원상회복 범위를 동시에 결정합니다.
갱신요구권 쪽 이야기는 상가 권리금 양수도 계약 체크리스트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같은 갈림길이 전혀 다른 두 결과를 만듭니다.
⚠️ 다만 주의하실 점. 판례 ②가 "지위 승계면 무조건 전부"라고 못 박은 건 아닙니다. 대법원이 쓴 표현은 "구체적·개별적으로 정해야 한다" 입니다. 계약서 문구, 인수 경위, 임대인의 인식 등을 종합해서 판단합니다. 그래서 계약 단계에서 서면으로 정해두는 것 말고는 확실한 방법이 없습니다.
통상의 손모는 어떻게 되나
"원상회복"이라고 해서 새것처럼 만들어 놓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통상의 손모란 임차인이 정상적으로 사용하면서 생기는 상태 악화나 가치 감소를 말합니다. 바닥이 조금 닳고, 벽지가 바래고, 못자국이 생기는 것 같은 것들이죠.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렇게 판단한 바 있습니다(2019가합4453, 2021. 6. 2. 선고).
임차인은 임차물을 통상의 용도로 사용하는 데 지장이 없는 상태로 복구하여 반환하면 되며, 통상의 손모는 원상회복의무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임대인은 계약 기간 중 목적물을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할 의무를 지고, 자연적 마모로 인한 가치 감소는 이미 차임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판단은 대법원이 아닌 하급심입니다. 실무에서 자주 인용되지만 확립된 대법원 법리로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새것처럼 돌려놓으라"는 요구가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비용은 어떻게 처리되나
보증금에서 공제됩니다
임차인이 원상회복을 하지 않으면 임대인은 그 비용을 보증금에서 공제하고 나머지를 돌려줍니다. 철거비가 보증금보다 크면 추가로 청구당할 수도 있습니다.
지연되면 그 기간도 책임집니다
원상회복을 끝내고 건물을 넘겨야 임대차가 완전히 정리됩니다. 짐만 빼고 시설을 그대로 두면 그 기간 동안 차임 상당액을 물어야 할 수 있습니다. 보증금 반환도 그만큼 늦어집니다.
유익비·부속물은 별개입니다
반대로 임차인이 돈을 받을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 유익비상환청구권 | 「민법」 제626조 | 목적물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증가시킨 비용 |
| 부속물매수청구권 | 「민법」 제646조 | 임대인 동의를 얻어 부속시킨 물건을 사달라고 청구 |
다만 실무에서는 계약서 특약으로 이 권리들을 포기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차인은 유익비 및 부속물매수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문구가 들어 있으면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계약서를 다시 확인해 보십시오.
그리고 영업을 위해 들인 인테리어 비용은 대체로 유익비가 아니라 임차인 본인을 위한 비용으로 봅니다. "내가 1억 들였으니 그만큼 달라"는 주장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계약 단계에서 정해두는 법
분쟁의 90%는 계약서에 안 적어서 생깁니다. 입주할 때 정해두면 나갈 때 싸울 일이 없습니다.
① 원상회복 기준 시점을 명시
"본 임대차 종료 시 임차인의 원상회복 범위는 본 계약 개시일 당시의 상태를 기준으로 하며, 그 이전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물은 원상회복 대상에서 제외한다."
양수인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한 줄입니다.
반대로 임대인이라면 "최초 임대 당시 상태" 로 명시해야 합니다. 어느 쪽이든 "어느 시점"인지를 적는 것이 핵심입니다.
② 입주 전 사진과 동영상
계약서보다 강력한 증거입니다.
- 입주 직전, 짐 넣기 전 상태를 구석구석 촬영
- 날짜가 찍히게 촬영하고 원본 파일 보관
- 천장, 바닥, 벽면, 전기·배관, 간판 자리까지
- 가능하면 임대인과 함께 확인하고 서명한 현황 확인서 작성
실무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지점이 이겁니다. 사진 한 번 찍는 데 10분이면 되는데, 안 찍어서 수백만원을 다투게 됩니다.
③ 인수 시설물 목록을 별지로
전 임차인에게 인수한 시설을 목록으로 만들고 임대인에게도 확인받아 두십시오. 권리금 계약서에만 적혀 있으면 임대인에게 대항하기 어렵습니다.
④ 철거 범위를 구체적으로
"원상회복한다"는 한 줄은 해석의 여지가 큽니다.
"간판·전기 증설분·칸막이는 철거하고, 바닥 타일과 천장 마감은 현상 유지한다."
이렇게 적어두면 다툴 게 없습니다.
실무 체크리스트
계약할 때
- 원상회복 기준 시점이 계약서에 명시돼 있는가
- 새 임대차계약인가, 지위 승계인가 계약서 문구로 확인했는가
- 전 임차인 시설 제외 특약이 들어갔는가
- 유익비·부속물매수청구권 포기 조항이 있는지 확인했는가
- 철거 대상과 유지 대상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가
입주할 때
- 짐 넣기 전 상태를 사진·동영상으로 전부 기록
- 임대인과 함께 현황 확인서 작성 및 서명
- 인수 시설물 목록을 임대인에게도 확인
나갈 때
- 만료 2~3개월 전 임대인과 원상회복 범위 협의
- 협의 내용을 문자나 서면으로 남김
- 철거 전 현재 상태 촬영, 철거 후 상태도 촬영
- 견적서는 2곳 이상 받아 비교
- 완료 후 임대인 확인을 받고 열쇠 인계 시점을 명확히 기록
자주 묻는 질문
Q. 권리금 주고 인수했는데 왜 내가 다 뜯어야 하나요?
권리금 계약은 전 임차인과의 계약이고, 원상회복은 임대인에 대한 의무입니다. 별개입니다. 권리금을 냈다는 사실만으로 원상회복 범위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Q. 다음 임차인이 시설을 그대로 쓰겠다는데요?
가장 깔끔한 해결책입니다. 다만 임대인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원상회복 의무를 면제한다"는 내용을 서면으로 받아두셔야 합니다. 구두 합의는 나중에 뒤집힙니다.
Q. 임대인이 터무니없는 견적을 가져왔습니다.
임대인이 실제로 지출했거나 지출할 상당한 범위의 비용만 청구할 수 있습니다. 직접 업체 견적을 받아 비교하고, 과다한 부분은 다툴 수 있습니다. 견적서와 시공 내역을 요구하십시오.
Q. 벽에 못 박은 자국, 바닥 긁힘도 복구해야 하나요?
통상적인 사용 범위의 손모라면 원상회복 대상이 아니라고 본 하급심 판단이 있습니다. 다만 정도가 심하거나 특약이 있으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계약서에 "원상회복한다"만 적혀 있으면요?
기준 시점이 없으니 결국 판례의 "구체적·개별적 판단"으로 갑니다. 계약 경위와 인수 형태를 따지게 되고, 그만큼 다툼이 길어집니다.
Q. 원상회복을 안 하면 보증금을 아예 못 받나요?
전액을 못 받는 건 아닙니다. 임대인은 원상회복 비용 상당액을 공제하고 나머지를 반환해야 합니다. 다만 비용이 보증금을 넘으면 추가 청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정리
| 임대인과 새 임대차계약 | 본인이 설치한 부분만 (판례 ①) |
| 임차인 지위를 승계 | 전 임차인 시설까지 가능 (판례 ②) |
| 통상의 손모 | 원상회복 대상 아니라는 하급심 판단 |
| 특약이 있는 경우 | 특약이 우선 |
세 줄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 "임대 당시"가 언제인지가 전부입니다. 계약서에 기준 시점을 적으십시오
- 새 계약이냐 지위 승계냐가 범위를 가릅니다. 권리금 인수 시 반드시 확인하십시오
- 입주 전 사진이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10분이면 됩니다
나가실 때가 아니라 들어가실 때 정리하셔야 하는 문제입니다. 지금 계약서를 꺼내서 원상회복 조항부터 확인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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