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가스 공사는 연간 2조 4634억원의 영업이익이 났는데 배당을 못하겠다고 해서 증권가에서 말이 많습니다. 비슷한 공기업인 한국전력도 역대 최대 규모의 33조 적자를 냈는데 가스공사가 전년도보다 영업이익이 2배 가량 늘었다고ㅗ 하니 말이 되나 싶은거죠.
1. 미수금 논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미수금이 8조원이나 쌓였기 때문입니다. 이 미수금 8조원을 받은셈 치고 계산하니까 2조 4천억원 흑자가 났다는 거죠.
한국가스공사는 외국에서 가스를 사올 때 지불하는 가격이 국내에서 판매하는 가격보다 높을 때 그 차액을 미수금으로 처리합니다. 예를 들어 외국에서 100원을 주고 가스를 샀는데 국내에서 80원에 팔면 차액인 20원을 미수금으로 처리합니다.
이 미수금이 특히 지난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지난 2020년말 1941억원이던 미수금이 2021년 말에는 1조8000억원으로 급증했고, 지난해 말에는 8조6000억원 수준까지 불어났습니다. 올 1분기 말에는 12조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미수금이 늘어난 이유는 잘 아실 겁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했는데 국내 도시가스요금에는 이같은 상승폭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LNG 수입단가는 지난 한해 동안에만 2배 가량 뛰었습니다. 그런데 도시가스요금은 30% 밖에 안 올랐습니다. 국제 가격과 국내 가격의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미수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죠.
여기까지는 이해가 쉬운데요. 투자자가 의아한 대목은 한국가스공사의 회계 처리가 미수금을 손실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차대조표상 자산으로 처리합니다.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도 가스를 계속 사와야 하니 대출을 받거나 채권을 발행하면서 부채가 생겼을 겁니다. 그렇게 늘어난 부채만큼, ‘아직 못 받은 도시가스요금’이란 명목의 미수금이란 자산을 취득한 것으로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보다 쉽게 풀이하자면, 도시가스를 원가보다 싸게 팔아서 생긴 손해가 8조6000억원인데 이것은 차후에 도시가스요금을 인상해서 메꿀 예정이니 이 부분은 올해 이익을 계산할 때 ‘받은 셈치겠다’라는 것입니다. 영업이익이 2조4000억원인데 미수금이 8조6000억원이란 것은 사실 영업손실 6조2000억원과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영업이익은 회계 장부상의 이익일 뿐 실제로 회사에서는 6조원이 넘는 현금이 빠져나갔으니 배당을 줄 돈이 없는 게 당연합니다.
2. 가스요금 내야 할 사람은 부채로 인식해야 되는거 아냐?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이란 회계처리 방식을 쓰면 웬만한 회사는 적자가 나지 않습니다. 생산 원가는 오르는데 과도한 경쟁 탓에 가격 인상이 힘들면 원가와 제품 가격의 차이만큼 미수금으로 잡으면 됩니다. 당연히 이렇게 하는 회사는 없습니다.
미수금 방식의 회계 처리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올해 도시가스 요금을 제대로 못 올려서 적자가 나면 재무제표에 그대로 적자라고 표시하고, 다음해에 흑자가 나면 그대로 흑자라고 적는 게 정상입니다. 올해 큰 적자가 났지만 미수금 때문에 흑자가 되고, 나중에 흑자가 나더라도 미수금 만큼 차감해서 흑자 규모를 줄이는 건 비상식적입니다. 더군다나 한국가스공사는 상장사입니다.
일단 이렇게 외상값으로 처리하려면 누구한테 언제 받을 수 있느냐가 명확해야 합니다. ‘누구’는 명확합니다. 소매상격인 지역의 도시가스 사업자들이죠.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도시가스 요금을 결정하는 정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받을 수 있는지는 불명확합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이 논란이 됐던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13년 한국가스공사는 미수금을 유동화하려 한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미수금이 들어오면 나눠주겠다면서 투자자를 모집해 미수금을 팔려고 한 것이죠. 한국회계기준원이 ‘일반적인 채권과 달리 미래 현금흐름이 확정돼있지 않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면서 무산된 이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봐도 한국가스공사가 미수금을 자산 처리하면, 지역 도시가스 사업자가 됐든 정부가 됐든 미수금 액수만큼 ‘아직 안 준 돈’, 즉 미납금과 같은 형태로 부채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가스공사도 할 말은 있습니다. 산업부의 승인을 받는 한국가스공사의 도매요금에서 원료비 항목에는 정산단가가 포함돼있습니다. 이 정산단가라는 것을 통해 미수금을 회수하는 것이죠. 구조적으로 미수금을 나중에 되돌려받을 수 있는 체계는 돼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수금으로 회계처리를 하는 가장 큰 근거는 ‘과거에도 이렇게 했고, 미수금을 잘 처리한 이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가스요금이 동결되자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은 2012년 말 5조5000억원까지 쌓였습니다. 이후에 가스요금을 국제시세보다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 2017년 미수금을 모두 털어냈습니다.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 방식으로 회계 처리를 하는 이유는 도시가스 요금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전력의 전기요금처럼 연료비에 연동하는 형태가 되면 도시가스 요금이 폭등할 수 있으니 민수용 도시가스에는 연료비 연동제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도시가스 요금 인상을 억눌러서 발생하는 손실은 미수금 형태로 처리하도록 하는 반대급부를 준 것입니다.
또 똑같이 부채가 늘어나더라도 대규모 적자가 나면 자본총계가 감소해 부채비율이 더 많이 오르게 됩니다. 기업의 신용도가 하락하기 때문에 더 높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해야 하고 이 이자부담이 다시 도시가스요금에 전가된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한국전력도 한국가스공사처럼 미수금 방식으로 회계처리를 하고 싶을 겁니다. 한국전력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글로벌 스탠다드에 안 맞습니다. 과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한국전력을 상대로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전력은 한국가스공사 지분 20%를 보유한 2대 주주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가스공사와 달리 한국전력은 뉴욕증시에서 주식예탁증서(DR) 형태로 거래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전력의 주식은 국내에 그대로 두고 ‘주식 보관증’을 뉴욕증시에서 거래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한국전력의 자회사도 문제가 되는데 한국전력 스스로 이런 회계 처리를 하겠다고 나서기에는 부담이 클 겁니다.
또 한국전력은 누가 갚을 외상값이냐가 더 불분명합니다. 외상값을 갚아야 할 사람이 한국가스공사는 지역 도시가스 사업자이지만, 한국전력은 일반 가정과 기업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가스공사 주주들의 답답한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원료비 상승을 도시가스 요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막대한 손실을 떠안은 것도 억울한데, 미수금이라는 회계 처리를 통해 기업 가치를 부풀렸다고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서울가스, 삼천리 같은 주요 도시가스 소매상들도 흑자가 났으니 한국가스공사의 흑자를 액면 그대로 믿은 투자자도 많을 겁니다.
그러나 소송전의 미래가 밝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과거 2012년 한국전력의 소액주주들이 ‘전기요금을 원가 이하로 책정해 주주 이익을 훼손했다’며 정부와 한전 경영진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한 적이 있습니다. 3년에 걸쳐 대법원까지 갔는데요. 결국 소액주주들이 패소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전기가 국민 일상에 필요불가결한 자원이어서 요금이 오르면 국민경제에 부담이 되는 만큼 전기사업의 공공성, 공익성 등을 고려할 때 원가보다 낮게 요금을 책정한 것을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 매일 경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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