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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화려한 대성당의 '불편한 진실'

by 단석비후 202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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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Budapest; 현지 발음은 ‘부더페슈트’)는 언덕으로 이루어진 부더(Buda)와 평지로 이루어진 페슈트(Pest)가 결합된 도시이다. 헝가리의 기원은 중앙아시아에서 온 마자르족 일곱 부족이 카르파티아 분지에 자리를 잡은 서기 8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슈트 지역에서 구심점이 되는 건축물은 의사당과 성 이슈트반 대성당인데 이 두 건축물은 최고 높이가 모두 96미터이다. 이것은 헝가리 민족이 이 지역으로 이주한 896년과 이주 1000년을 맞는 1896년을 기념하기 위한 상징적인 높이였던 것이다.

부더(Buda)의 왕궁에서 내려다 본 광경. 도나우 강 건너편 페슈트(Pest) 지역에는 이슈트반 대성당이 랜드마크를 이룬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서기 1000년 초에 헝가리를 기독교화한 헝가리 왕국의 초대 왕 이슈트반 1세에게 헌정되었으니 헝가리 사람들의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대성당의 돔은 페슈트 지역의 심장부를 원대한 힘으로 뚫고 나와 하늘로 솟아오른 듯하다.

그런데 이 성전이 1851년에 착공될 당시 이 지역은 허허벌판에 가까웠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건물은 도시계획에 의해 도로망이 먼저 형성되고 난 다음 그 틀 안에서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성당의 경우는 정반대로 성당이 먼저 세워지고 난 다음 이를 기준으로 주변의 도로망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서양의 도시계획에서 이런 예는 아주 드물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의 정면. 라틴어 성경구절 EGO SUM VIA VERITAS ET VITA이 눈부시게 반사된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최대 8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정면을 보면 먼저 금빛의 라틴어 성경구절 EGO SUM VIA VERITAS ET VITA이 눈길을 끈다. 이 구절은 다름 아닌 요한복음 14장 6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여러 가지 색상의 대리석으로 장식된 실내공간에 오르간 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진다. 중앙제단 바로 뒤에는 성 이슈트반의 조각상이 초점을 이루고, 중앙제단 옆 황금 성골함 안에는 성 이슈트반의 미라가 된 오른손이 보존되어 있다. 그의 유골을 발굴 했을 때 오른손만이 미라형태를 유지했는데 사람들은 그의 오른손은 항상 십자가를 잡고 있었으니 그랬을 거라고 믿는다.

한편 성당 내부에 있는 여러 성화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헝가리 화가 벤추르(G. Benczúr 1844–1920)의 그림이다. 이 그림은 이슈트반 1세가 천사들이 보는 앞에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에게 헝가리 왕관을 바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이것은 이슈트반 1세가 헝가리를 기독교화 했다는 의미이자 이질적인 헝가리 민족이 유럽의 일원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이슈트반 1세가 성모 마리아에게 헝가리 왕관을 바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대성당의 공간 구조는 그리스 십자가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그 중심에 돔이 올려진 형태인데, 이런 방식은 르네상스 건축에서 쓰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성당은 네오 르네상스 양식이다. 성당의 내부 공간은 높은 돔의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에 의해 밝혀져 있다. 안쪽 지름이 22미터나 되는 돔 한가운데에는 인간을 창조하고 우주를 다스리는 신이 인간세상을 심판하려고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색조의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대성당 내부

돔을 지켜보는데 라틴어로 된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베리타스(Veritas)라는 말이 자꾸만 머리에 떠오른다. ‘베리타스’는 ‘진리’, ‘진실’이란 뜻이다. 그러고 보니 이 성당 건축에 얽힌 ‘불편한 진실’이 문득 떠오른다.

1906년 봉헌 미사 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축사를 했는데 당시 소문에 의하면 황제는 연설 도중에 불안한 눈초리로 자꾸 돔을 올려다보곤 했다고 한다. 만약 그 소문이 진실이라면 왜 그랬을까?

사실 이 성당을 짓는데 시간도 많이 걸렸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이 성당은 1856년 건축가 힐트(J. Hild)가 설계하여 공사를 반 이상 진행하던 중인 1868년에 사망하는 바람에 건축가 이블(M. Ybl)이 공사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는 그때까지 진행된 공사 현장을 꼼꼼히 점검하다가 벽이 금 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즉시 공사장 주변에 안전 펜스를 치고 점검단으로 하여금 이를 주의 깊게 지켜보도록 했다.

그후 8일 째 되던 날 마침내 엄청난 사고가 발생했다. 대낮에 그만 돔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지진이 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사고가 났을까? 당시 건축자재를 질이 낮은 제품으로 쓴 것과 돔을 지탱하는 부분의 공사를 잘못한 것이 화근으로 추정된다. 이를테면 부실공사였던 셈이다.

참혹한 현장을 둘러본 건축가 이블은 성당 설계를 아예 거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공사를 진행 하던 중이던 1891년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를 이어 세 번째 건축가인 크라우스(J. Krausz)가 공사를 맡아 완공한 것은 1905년이고 다음해에 봉헌미사가 올려졌다. 그러니까 완공목표로 삼았던 헝가리민족 이주 1000주년을 기념하는 해를 10년이나 넘긴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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