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만 해도 몸이 들썩이는 케니 로긴스의 ‘Danger Zone’이 흐른다. 석양이 어린 캘리포니아주 미라마 해군기지, F-14 톰캣이 하늘을 향하고 그 옆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매버릭(톰 크루즈 분)의 모습은 지금도 회자되는 영화 ‘탑건(Top Gun, 1986)’의 명장면이다. 이 명장면에 오늘의 주인공이 있다. 바로 반항적이고 무모한 미 해군 조종사 매버릭의 상징이자 조종사의 필수 아이템, 선글라스다.
조종사 눈 건강을 위해 필수적
미 연방항공청(FAA)에 따르면 피부와 눈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외선은 고도가 약 305m 높아질 때마다 5%씩 증가한다. 6,096m 상공에서는 자외선의 양이 지표의 두 배가 되는 만큼, 자외선을 확실히 차단하는 선글라스는 조종사 눈 건강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조종사용 선글라스는 여기에 더해 비행 중 순식간에 변하는 환경, 조종석 내부의 계기판 등을 정확히 인식해야 하므로 선글라스가 시야에 방해가 되면 안 된다는 특징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조종사용 선글라스는 편광 렌즈를 사용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편광 선글라스는 반사광으로부터 안구를 보호하지만, 오늘날 디지털 조종석에 설치된 조종석의 화면은 LCD(액정 디스플레이) 화면으로 제작돼 있고, LCD의 빛이 편광이므로 특정 각도에서는 화면이 보이지 않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야 확보를 위해 선글라스를 선택할 때 조종사들은 주로 채도가 낮은 렌즈를 고른다. 날씨의 변화나 구름의 흐름을 읽어야 하는데 채도가 높은 착색 렌즈를 사용하면 이를 판단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광량에 따라 색이 변하는 변색 선글라스는 렌즈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데 얼마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금물이다.
그렇다면 조종사에게 적합한 안경테는 무엇일까? 미광이 선글라스 측면이나 후면에서 조종사의 눈으로 들어오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랩어라운드’ 스타일의 안경테를 많이 고른다. 특히 안경다리는 얇고 머리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조종사가 헤드셋을 착용했을 때 방해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조종사용 선글라스의 시작
1923년 대서양 논스톱 횡단에 성공한 미군 조종사 존 맥레디(John Macready) 대령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고공 비행 시 강렬한 햇빛 때문에 눈부심과 구토감, 두통을 느꼈던 것. 이를 해결할 필요성을 느낀 맥크레디 대령은 안경 제조사 바슈롬(Bausch & Lomb)을 찾아가 눈부심을 방지하면서도 시야를 가리지 않는 조종사용 특수 안경 제작을 요청했던 것이 오늘날 조종사용 선글라스의 시작이다.
조종사용 선글라스는 흔히 에비에이터 선글라스(Aviator Sunglasses)로도 불린다. 1937년 특허를 받고 1939년 미 육군의 시험을 통과하며 본격적으로 군에 납품된 선글라스는 얼굴형에 맞도록 크고 볼록하게 제작된 잠자리 눈 모양의 플라스틱 안경테에 눈부심 방지 처리를 한 녹색 렌즈를 넣어 제작됐다.
안경테의 모양은 눈을 최대한 보호하면서도 항공기의 계기판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사각을 없애 밑 부분이 처진 모양으로 개발된 것이다. 당시 선글라스의 브랜드명은 ‘안티 글레어(Anti Glare)’였으나 얼마 뒤 금속 안경테로 소재를 변경하며 ‘레이밴(Ray-Ban)’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조종사용 선글라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즐겨 착용하며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쟁 중 필리핀 해안에 정박한 군함에서 레이밴 선글라스를 쓰고 내려오는 미 육군 원수이자 연합군 총사령관이던 맥아더 장군의 모습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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